바르셀로나 역사를 바꾼 초라한 “냅킨 계약서”

매일 같이 수십만원의 비용을 들여가면서 성장이 멈춘 메시의 키를 자라게 하기 위하여 성장 호르몬 주사를 맞았지만, 경비를 감당하기 어려웠고, 뉴웰스 측에 치료비 지원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하는 아픔을 겪고 있었던 메시에게  구원의 손길이 내려왔다.

바로 스페인 명문 바르셀로나에서 유소년 입단 테스트를 제의한 것이다. 이에 더이상 아르헨티나에선 희망을 가질 수 없었던 메시는 입단 테스트를 받으러 스페인으로 넘어가기에 이르렀다.

당시 바르셀로나 기술위원장이었던 카를로스 렉사흐는 메시가 뛰는 모습을 보고서는 그의 기량에 매료되었다.  이에 그는 즉시 인근 레스토랑에서 메시의 부친 호르헤와 만나 냅킨에 ” 구단내에 반대의견이 있지만 내가 모든 책임을 지고 메시의 영입을 보증 하겠다” 라는 내용의 가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2000년 12월 14일의 일이었다.

이 초라한 냅킨 계약서가 메시와 바르셀로나의 미래를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바르셀로나의 치료비 지원을 받게 된 메시는 ‘라 마시아’에서 키와 실력을 동시에 키워 나가며 세스크 파브레가스와 헤라르드 피케 그리고 페드로 등과 함께 ‘ 황금의 라 마시아 87세대’를 형성했다.

특히 그는 2003-2004 시즌 후베닐 B팀을  시작으로  후베닐 A팀을 거쳐 바르셀로나 C팀, 바르셀로나 B팀, 그리고 바르셀로나 1군 팀에 이르기까지 무려 5개의 팀에 이름을 올리는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메시는 2004년 10월 16일 에스파뇰과의 경기에서 교체 출전해 바르셀로나 구단 역사상 3번째로 어린 나이에 프리메라리가에 데뷔한 선수(만17세, 114일)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그는 2005년 5월 1일 알바세테와의 경기에서 데뷔골을 넣으며 구단 역대 최연소 프리메라리가 득점 선수 (만17세, 311일)에 등극하기에 이르렀다.

비록 2004-05시즌에 메시는 7경기 출전이 전부였으나, 바로 이시즌에 바르셀로나는 6시즌 만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느데 성공했다.  이후 바르셀로나는 황금기를 구가하기 시작한다.

말 그대로 메시의 존재 자체가 바르셀로나에게 행운의 부적과도 같았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더해 2005년 여름  메시는 네덜란드에서 열린 20세 이하 FIFA 월드컵에서 6골로 득점왕에 오르며 아르헨티나의 우승을 이끌었다.  당연히 MVP도 그의 차지였다.

이 대회를 기점으로 자신의 주가를 한층 높인 메시는 2005-06시즌에 슈퍼 조커로 활약하며 바르셀로나의 프리메라리가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출전시간이 많았던건 아니지만 공식대회 25경기에 출전해 8골 2도움을 올리며 자신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시즌 종료후 메시는 아르헨티나 대표팀에 승선해 만 18세의 어린 나이에 2006년 독일 월드컵에 참가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아르헨티나 감독 호세 페케르만은 메시를 가리켜 보석이라며 높은 기대감을 내비쳤다.

2006-07시즌을 기점으로 팀의 주전으로 확고하게  발돋움한 메시는 서서히 자신의 영향력을 높여 나갔다. 반면에 원래 바르셀로나의 에이스였던 호나우디뉴는 자기 관리에 실패해 체중이 불어나는  등 문제를 노출하며 급격히 하향세를 타고 있었다.  이와 함께 바르셀로나는 2007-08시즌에는 무관에 그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이제 바르셀로나에게는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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